'차르' 등극 15년…외신이 본 푸틴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07 17: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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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디언, 푸틴 15년 소개


'차르' 등극 15년…외신이 본 푸틴

영국 가디언, 푸틴 15년 소개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7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꼭 15년 되는 날이다.

푸틴 대통령은 연방보안국(FSB) 국장이던 1999년 8월 9일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발탁됐고 그해 12월 31일 옐친이 전격 사임하면서 대통령직을 대행했다. 이어 이듬해 3월 26일 대선에서 당당히 당선돼 5월 7일 취임했다.

이후 2004년 3월 14일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해 2008년 5월 7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다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자리를 맞바꿨다. 재선만 허용한 러시아 헌법에 따라 푸틴이 메드베데프 당시 총리에게 대통령직을 사실상 물려준 것이라는 데는 자타가 이견을 달지 않는다.

푸틴은 이어 2012년 대선을 통해 대통령직에 복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옐친에 이어 러시아 2대 대통령이자 4대 대통령인 셈이다.





푸틴 취임 15년을 맞아 영국 일간 가디언 6일 자 인터넷판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15년: 그가 러시아와 세상을 바꿔온 15가지 방법(ways)'이란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실었다. 기사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우크라이나,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그리고 '인접국'(소련 해체 후 독립한 14개국)

푸틴은 일찌감치 조지아에서 "푸틴 독트린"의 틀을 마련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포위가 좁혀지는 가운데 세력권 내 자국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종종 무력을 사용해온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둔 수는 조지아보다 더 위험해 보인다. 우크라이나 내 크림반도 병합은 (러시아)여론의 지지를 얻었지만 동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서는 러시아인들이 사망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와 유가 하락은 러시아 경제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푸틴은 현재로서는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전략적 목표도 달성했지만 희생 역시 적지않았다.

◇나토에 대한 반대

옐친 시절 러시아는 나토와 '마지못한 협력'(grudging cooperation) 정책을 구사했지만 푸틴 정권이 들어서서는 완전히 바뀌었다. BBC와의 첫 인터뷰에서 나토의 동진정책이 러시아에 위협이라고 주장했던 푸틴은 현재 군사적 근육을 과시하고 있다. 나토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10월 러시아 전투기를 요격하기 위해 나토 기가 출격한 횟수는 100회 이상으로, 2013년 한해의 3배가 넘었다.

러시아의 새로운 공세적 입장은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물론 북유럽 국가들도 우려하게 만들어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나토 가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러시아의 잠수함이 스톡홀름 군도에 출현해 스웨덴 해군이 대대적인 추격전을 벌였고 지난 3월에는 승객 132명을 태운 스칸디나비안 항공 여객기가 자신의 위치도 알리지 않은 러시아 정찰기와 충돌할 뻔하기도 했다.

◇독재정치

경제정책에서는 입장이 오락가락했을 수 있지만 자신의 권력은 끊임없이 공고화해 왔다. 2004년에는 대통령에게 주지사 지명권을 부여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2012년에는 그 유명한 메드베데프와의 "성곽 化(castling)"를 통해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이 와중에 애완용 개에 비유되는 러시아 의회는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가결했다. 푸틴은 2018년 대선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만일 당선된다면 18년을 재임한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은 물론 이오시프 스탈린보다 더 장수하는 셈이다.

◇개인숭배

꼭 개인숭배만은 아니다. 익살스러운 행동, 잦은 병치레, 그리고 TV에서 보여진 혀 꼬부라진 소리 등 옐친 시절의 10년이 러시아인들에게 큰 상처를 줬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푸틴은 그런 그들에게 승마, 웃통을 벗어젖힌 모습, 호랑이와의 레슬링, 깨끗한 삶, 직설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모습 등 러시아말로 '무지크(사나이)'의 마초기질을 보여줌으로써 뭔가 큰 것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그의 이미지 메이커들이 만든 것들이다. 그의 보톡스 사랑과 자기 절반 나이의 올림픽 체조선수와의 염문 등 소문은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 언론은 이런 소식들은 다루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푸틴이 처음 집권했을 때 러시아는 대재앙에 가까운 1990년대의 시장개혁과 1998년 경제위기에서 갓 벗어나려던 때였다. 새로운 대통령은 원대한 경제비전은 갖지 못했지만 기업에 유리하게 세금을 대폭 낮추고 2003년 정적이었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의 유코스오일을 시작으로 주요 부문에서 민영화된 기업을 다시 국유화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주요 수출원인 석유의 가격상승은 러시아가 전례없는 호황기에 접어드는 데 일조했으며 여전히 푸틴의 덕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덕분에 1999년에서 2006년 사이 러시아의 실질가처분 소득은 배로 늘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러시아의 고속 성장세는 멈췄고 막대한 오일달러에도 불구하고 경제 다변화나 산업 현대화에는 거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유가 하락과 서방의 제재가 시작되기 전에도 경제학자들은 러시아의 경기 침체를 예견했었다.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은 지난달 푸틴 집권 초기 연간 7%에 달했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해에는 0.6%에 그쳤다며 올해 불황을 경고했지만 러시아 어로 GDP를 의미하는 VVP와 머리글자가 똑같은 푸틴 대통령(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VVP)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인구성장?

푸틴이 집권할 때 러시아 인구는 경고수준이었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 당시 1억 5천만 명 정도였던 인구는 출산기피, 남성들의 조기 사망 등과 맞물려 연간 거의 100만 명씩 줄었다.

그러나 인구감소 추세는 서서히 바닥을 찍은 뒤 2010년부터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푸틴 집권 시절 경제사정이 나아졌다는 게 주 요인이다. 러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8년 1억4천200만 명이던 인구는 현재 1억4천600만 명을 웃돌고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인구가 220만 명 늘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긍정적인 현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경제전망은 다시 불투명해졌고 러시아의 지난 1월 출산율은 4% 감소했다.

◇아시아 중시정책

다극화 사회를 주장해온 푸틴은 최근 몇 년간 러시아의 에너지를 갈구하면서도 인권문제에는 덜 비판적인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군사 협력에 힘써왔다.

푸틴은 지난해 총 4천억 달러(약 436조 원)에 이르는 대중국 가스 수출 건을 성사시켰고 양국은 이달 말 지중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도 시행할 예정이다. 푸틴은 또 현재도 극동지역에 노예노동에 가까운 벌목장과 농장을 운영하는 북한에 철도기술을 수출하기로 합의했다.

◇탄압

석유 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의 수감과 몇몇 유력 야당인사 암살로 인해 푸틴의 러시아는 이미 반체제 인사는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 됐다.

모스크바에서 아랍의 봄을 연상케 하는 야당의 시위가 벌어진 2011~2012년 겨울이 정점이었다. 푸틴은 신속히 움직였고 반부패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리와 27명의 시위 주동자들이 수많은 모호한 혐의로 정식 기소됐다.

지난 2월에는 부총리를 지낸 보리스 넴초프가 크렘린 부근에서 암살됐다. 체첸 지도자인 람잔 카디로프에 충성하는 보안장교들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푸틴은 이 사건 직후 카디로프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도덕적' 비전

야당과 비정부기구들, 그리고 인터넷에 대한 탄압과 함께 푸틴의 세 번째 임기시절은 러시아를 '전통적 도덕성의 보루'화하려는 푸틴의 비전을 반영한 일련의 입법이 이뤄졌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법이 2013년 통과된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선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또 푸틴 시절 세계 2차대전은 애국심을 고취하는 소재가 됐으며 지난해에는 전쟁 당시 소련의 역할을 "왜곡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이 채택됐다.

◇다극화 세상?

푸틴의 외교정책을 관대하게 보면 서방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것으로, 중국과 함께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정치력에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다.

옐친이 계속 미국의 호주머니에 있었다면 푸틴은 미국의 등에 올라타고 있다.

◇동유럽인, 특히 러시아인의 망명처 런던

푸틴 치하에 영국과 러시아 관계는 역설적으로 변모했다. 스파이와 살인 등으로 공식관계는 다시 냉랭해졌지만 수많은 러시아인과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런던이 그들이 선호하는 제2의 고향이 된 것이다.

올리가르흐(과두지배세력)들은 자녀들을 호화로운 사립학교에 입학시키고 그들의 회사를 상장하는가 하면 첼시 등 축구단을 매입했다. 일부는 일종의 보험용으로, 일부는 최첨단 유행에 따른 것이다.

◇새로운 발견…스포츠 특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푸틴에게는 하나의 승리였다. 공세적으로 올림픽을 유치한 데다 13개의 금메달을 가져갔으면서도 큰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2018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한다.

엄청난 건설프로젝트를 포함하는 이런 정부 지원 행사들은 러시아의 사기성 농후한 공무원들에게는 금광이 돼왔다. 소치 올림픽에 대한 보고서를 쓴 넴초프는 총 비용 500억 달러(약 54조5천500억 원) 가운데 300억 달러(32조7천300억 원)가 부패로 사라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패

정부의 반부패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부정한 나라라는 오명을 털어내는 데 실패했다. 지난해 러시아는 국제투명성지수에서 175개국 중 136위를 차지했다. 2013년의 127위, 2012년의 133위에서 더 미끄러진 것이다.

푸틴 개인자산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지만 많은 전문가는 푸틴 자신이 정부부패로 큰 이득을 얻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군

푸틴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군대를 인수했다. 두 번째 임기 중 노후화된 징병제 군 개혁에 착수했다. 러시아는 현재 GDP 기준으로 미국보다 더 많은 비율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2015년 국방예산은 기록적인 810억 달러(88조3천700억 원)에 이른다.

◇새로운 선전술

푸틴은 국영인 '리아 노보스티통신'을 폐쇄하는 대신 '로시야 세보드냐(러시아의 오늘)'통신을 신설하고 반미 음모이론으로 유명한 방송 앵커 출신인 드미트리 키셀료프를 사장으로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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