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사이서 절묘한 줄타기…21세기는 터키의 시대?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20 1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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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SS, 지역 열강으로 발돋움하는 터키 조명


미-러 사이서 절묘한 줄타기…21세기는 터키의 시대?

러시아 SS, 지역 열강으로 발돋움하는 터키 조명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 있는 터키공화국. 기독교와 이슬람교 세력간 숱한 전쟁으로 두 종교의 문화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다. 동로마제국 시절인 서기 532~537년 건립돼 현존하는 최고 비잔틴 건물로 꼽히는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 벽화는 비잔틴식 벽화 위에 이슬람식 벽화가 덧칠돼 있어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13세기 말 아시아에 속하는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발흥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3개 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1299~1922)의 정통성을 승계한 나라이기도 하다. 13세기에서 20세기까지 장장 8세기 동안 온갖 영욕이 교차했겠지만 러시아-오스만 전쟁 이후인 1894~96년과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16년 두 차례에 걸쳐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은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앙금으로 남아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 자국 내 친(親)러시아 성향의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강제 이주를 단행하면서 발생한 두 번째 학살은 현대사의 첫 조직적 학살사건으로 인식된다.

당시 오스만제국은 전쟁 중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소수민족인 아르메니아인을 이라크·시리아·팔레스타인 등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이 과정에서 약 100만 명이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희생됐다고 한다. 물론, 터키 정부는 전시 상황에서 오스만제국을 침공한 러시아군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던 아르메니아인 반군이나 첩자가 죽은 것이며 피해 규모도 부풀려져 있다며 학살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터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한다. 맹방이었던 미국은 물론 러시아와도 '불가근불가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탐사기획 전문 월간지인 '소베르센노 세크레트노'(극비로. 이하 SS) 19일 자 인터넷판은 '우리에게는 (기대야 할) 터키의 언덕이 필요하다'는 제목으로 터키의 이런 최근 몇년간의 움직임을 짚었다.

SS는 먼저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그리고 러시아가 3차 세계 대전으로 세계를 위협하면서 정치적 근육을 겨루는 사이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지역에서는 새로운 지역 강국이 (세계무대를 향한) 출구를 다지고 있다. 이 나라는 세계적인 정치 중심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적인 정치력과 급성장하는 경제력, 그리고 유럽과 중동지역 중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나라가 바로 터키다"고 했다.

이어 "권위 있는 전문가들은 21세기가 전적으로 이 나라의 시대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현재의 터키는 단순히 자존심뿐만 아니라 전 중동지역과 남부 발칸 지역에서 선도적 열강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충만해 있다"고 전했다.

이 잡지는 그러면서 '터키의 시대'를 점치는 배경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국이면서도 도입을 검토 중인 대공미사일 방어망은 미국산이 아닌 중국산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서방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수출선을 자국으로 유치하는가 하면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평가되는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세 가지 점을 들었다.

먼저 대공방어망. 터키는 지난 5년간 사업비 40억 달러(약 4조 3천788억 원)에 이르는 대공미사일방어 시스템 구매 입찰을 벌여왔지만 아직 최종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중국산에 1순위를 매기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이탈리아 컨소시엄이 2위, 그리고 미국산이 3위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의회는 중국 대공미사일 시스템 관련 업체와 협력하는 모든 국가나 사람들에게는 미국 자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고 이스메트 이을마즈 터키 국방장관은 이에 대해 "최종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면서도 중국과 협력해 제작하는 미사일 방어망이 나토의 시스템과 상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고 한다. 또 유럽산에 대해서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한 유럽의 입장이 고려 대상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유럽, 특히 프랑스는 터키를 상대로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해왔다.

SS는 이와 관련, '아르메니아 학살' 문제가 바로 터키가 지역 열강으로 발돋움하려는 동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1915년 발생한 아르메니아 학살은 터키의 아픈 부분으로,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민족적 동질성을 모색하고 있는 터키의 노력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 학살' 문제는 터키인들에게 현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실질적 정책을 모색케 하고 있다고 이 잡지는 해석했다.

빌기 일테르 투란 이스탄불대학 정치학 교수는 이 잡지와 인터뷰에서 "2007년은 터키의 대내외 정책에 전환이 이뤄진 해였다. 터키는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수행하기 시작해 매번 전통적 동맹국들에 우선 순위를 두던 정책에서 벗어났다"면서 "야심만만한 지도부를 갖추고 세계경제 위기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열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투란 교수는 이어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터키의 정치인들과 전략가들은 이제 터키가 세계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 열강이 됐다고 간주하고 있다"면서 "풍부한 경제자원으로 인해 터키는 이제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은 물론 비교적 작고 상대적으로 빈곤한 발칸 국가들까지 지원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산 가스를 유럽 동남부로 수송하게 될 가스수송관, 이른바 '터키 스트림'도 터키의 독자 노선을 보여준 사례로, 미국에는 아픈 부분이다. 이 수송관은 당초 '말을 잘 듣지 않는'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연간 610억㎥의 가스를 유럽에 수송하려던 러시아의 '사우스 스트림' 계획이 무산된 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으로, 터키가 자임한 것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일 수도 앙카라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고 경제협력과 상호투자, 200억 달러(약 21조 9천260억 원) 상당의 원전 건설, 그리고 '터키 스트림' 개통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 가스관은 러시아산 가스를 흑해를 가로질러 터키를 거쳐 유럽 동남부에 공급하는 것으로 연간 예상 수송량은 630억㎥에 이른다.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유럽과 미국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이가스관은 내년 12월 개통될 예정이라고 한다.

러시아 '전략문화재단'의 전문가 미하일 아가쟈난은 "터키가 미국과의 동반자 관계에 별 비전이 없음을 인식한데다 '조속한 시일내에 EU에 가입할 것'이라는 EU의 오랜 약속에 대해서도 신뢰를 잃어 지역 열강이자 중동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의 중심이 되려는 자신의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터키가 인접한 시리아에 대해서도 '낮은 수준의 병합'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과거 '전략적 동반자' 관계였던 터키와 미국 관계는 현재 '모범적 동반자' 관계로 사실상 격하됐고 한때 정상이던 터키와 이스라엘 관계 역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가자지구에 인도물품을 지원하려던 10명의 터키인이 사망한 이후 급격히 악화됐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크게 좋아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터키가 러시아와 갈등 중인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캅카즈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얼마전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우리는 크림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의 영토성과 정치적 통일성 그리고 독립성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에도 일침을 놓은 셈이다.

SS는 "터키와 동맹을 맺을 지 여부는 얼마만큼 터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냐에 달린 것"이라면서 "지역 열강으로서 터키는 러시아가 독점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는 캅카즈와 중앙아시아를 자신의 세력권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별도로 터키는 이미 수십년 동안 오스만제국 시절 건설된 다리와 도로, 궁전, 목욕탕, 이슬람 사원 등에 대한 복원을 명목으로 경제력을 발판으로 발칸 지역에서 문화·역사 유적 복원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터키가 나름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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