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찬욱 감독이 답했다…삐뚤어진 '아가씨' 바로 보는 법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6-12 1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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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아가씨'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담고 있는 작품"

"김민희-김태리의 마지막 정사 장면, 처음부터 가졌던 계획"
△ [K-포토] 미소짓는 박찬욱 감독

* 해당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포커스뉴스)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로 한국영화에 7년 만에 복귀했다. 영화 '아가씨'는 그의 첫 시대물이기도 하다.

앞의 두 가지 문장만으로도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에 기울인 관심과 애착을 짐작할 만하다. '아가씨'는 제목처럼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영화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비틀어진 당시 상황이 가시처럼 날카롭게 서 있다. '아가씨' 속에서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등이 보여준 겉과 속처럼 말이다.

'아가씨'는 히데코(김민희 분), 숙희(김태리 분),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 그리고 히데코의 후견인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관계를 담은 이야기다. 네 사람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히데코는 코우즈키의 저택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백작과 숙희는 그 심리를 이용해 아가씨를 속여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지극히 표면적인 목적은 말이다.

-영화 '아가씨'의 배경은 1930년, 일제강점기다. 박찬욱 감독님께서는 '시대가 주는 상황 때문에 영화가 다층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는 말씀을 하셨다. 개봉 전, 대중들이 '일제강점기의 사랑'이냐며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 '아가씨'에서도 일제 강점기를 병풍처럼 쓰지는 않았어요. 친일파도 그냥 친일파가 아닌 '슈퍼(super) 친일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떤지를 시각적으로도, 주거양식이나 의상 등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코우즈키는 '일본과 친하다' 정도에서 만족할 수 없고 자신이 일본인이 되어야 했던 거죠. 일본 여자와 결혼해서, 부인의 성을 쓰고, 일본인이 되는 게 그 사람의 최선이죠. '아가씨'는 결국 히데코와 숙희가 슈퍼 친일파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죠.


-'아가씨'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원작에서도 하녀의 시점으로 시작해 아가씨의 시점으로 옮겨지기는 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기도 하다. 고민이 컸을 것 같다.

▲ 화자가 달라지는 재미 때문에 '아가씨'를 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원래는 반복을 더 많이 하고 싶었어요. 숙희가 도착한 이후의 모든 장면을 다 다시 보고 싶었어요. 전부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거죠. 말 한마디, 같은 행동을 해도 완전히 다르게 들리고, 보이는 거죠. 그런데 너무 길어져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줄이고, 찍어놓고서 또 줄이고 했죠.

-줄어든 장면은 '아가씨' 블루레이 DVD에서 만나볼 수 있는 건가?

▲ 어차피 시나리오 단계에서 많이 줄여놨기 때문에 아주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상영시간은 약간 늘어나겠죠.(웃음)

-과거 '감독이라면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공을 들이기 마련'이라는 말을 했다. '아가씨'의 첫 장면은 일본 군인들의 군화에 흙탕물이 튀는 것이었고. 마지막 장면은 숙희가 머물던 곳에서 바라본 히데코의 방문이었다. 시작과 끝의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 시작은 일제강점기의 폭압적인 제국주의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에요. 그게 젊은 여성이 자기가 안고 있었던 아기를 다른 여성에게 넘겨주고 떠나는 장면으로 이어져요. 이후, 굉장한 저택으로 보따리 하나 꼭 안고 들어가요. 너무나 압도적인 집이죠. 전반적으로 '레베카'(1954년)같이 고딕 공포영화 느낌을 줘요. 장르적인 측면에서 관객을 오도하는 의미가 있어요. 공포인가 싶었는데 전혀 다르게 풀려가는 재미를 주죠. 한편으로는 오도가 아닐 수도 있어요. 악마, 변태 같은 친일파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면에서 맞기도 하잖아요. 절묘한 시작점을 갖고 싶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참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결국은 시나리오로 돌아왔죠. 히데코와 숙희가 행복하게 멀리 떠났잖아요. 그리고 남겨진 빈방에서 달 모양이 차오르며 시간이 흐르는 거죠. 관객이 상상할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숙희가 처음 코우즈키 저택의 계단을 오를 때, 벽에 걸린 히데코 초상화 두 개가 굉장히 그로테스크했다. 해골 모양으로 보이다가 숙희가 지나면서 아가씨의 형상이 되더라.

▲ 거기에 일부러 그런 효과를 넣긴 했어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림이 살짝 웃는 효과를 주었거든요. 약간 공포영화같이. 그런데 그게 너무 부각되면 안 되니까 관객이 '잘 못 봤나?' 싶은 정도로만 하려고 했어요.


-'아가씨'는 굉장히 양분된 반응을 보였다. 최고의 극찬이 있으면서도, 굉장한 불편함을 주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김민희와 김태리의 정사 장면이 '꼭 필요했나'하는 관객의 반응도 있었다.

▲ 필요 없는 건 안 하죠. 애초부터의 계획이었어요. 두 사람이 어디론가 떠난다는 결말을 하겠다. 그리고 떠나면서 섹스를 하겠다. 이것이 처음부터 원칙이었어요. 마지막 정사 장면에서 히데코가 학대당할 때 사용된 것 두 가지가 등장하죠. 하나는 두 번째 낭독회에서 히데코가 녹색 기모노를 입고 읽었던 책의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히데코가 손등을 얻어맞을 때 사용됐던 코우즈키의 구슬 모양의 문진이죠. 그 두 가지를 히데코가 연인과의 쾌락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거죠. 전복된 상황에서 나오는 쾌감이 있다고 봤어요. 두 사람이 키득키득하면서 즐겁게 노는 것처럼 보여 주잖아요.

-'아가씨' 속에서는 수많은 춘화가 나온다. 특히, 문어가 나오는 춘화는 지하실 장면과 연관성을 갖기도 한다.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실제 작품 '어부 아내의 꿈'(1820경)은 처음부터 그 의도로 사용된 건가?

▲ 칸영화제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현지 기자들이 다 안다는 듯 미소 지으며 '스스로 자기 영화를 인용하면서 농담을 시도한 것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도 못 했었어요. 제 대답은 '한국에서는 이런 질문이 안 나올 것이다. 한국인들은 문어와 낙지쯤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거든요.(웃음) 영화 속에서 사용된 춘화가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더라고요. 부끄럽게도 이번 작업하며 처음 봤어요. 원래 호쿠사이라는 작가를 좋아했어요. 우키요에의 대표적인 작가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춘화를 그린 줄도 몰랐어요. 그만큼 이 작품을 하면서 그게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대경실색했어요. 그 상상력은 역겨운데, 그걸 형상화하는 실력은 또 뛰어나고. 그래서 충격이 된 거죠. 그림이 조잡했다면, '역겹네'하고 던져버렸을 텐데.

-아름답기에 충격이 됐다는 면은 '아가씨'와 유사한 지점인지도 모르겠다.

▲ 어쩌면 제가 추구하는 세계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가끔 영화에서 역겹거나 잔인한, 그런 끔찍한 것을 묘사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을 더 잘, 아름답게 묘사하면 할수록 그런 감정은 더 강하게 살아나요. 역겨움이나 잔인함이. 그래서 호쿠사이의 춘화가 주는 인상이 더 강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님이 제작보고회 당시 한 말처럼 '명쾌하고 깨알 같은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독님의 초창기 작품인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휴머니즘이 가미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 그렇죠. 정신병자 같은 사람 대신에요? (웃음) 얼마든지 그럴 수 있죠. 지금 당장 써 놓은 작품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죠. 그런 작품도 해야죠.(서울=포커스뉴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6.03 김유근 기자 영화 '아가씨'에서 하녀 숙희(김태리 분)과 백작(하정우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은 '영화 '아가씨'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모호필름>아가씨(김민희 분)이 낭송회에 임하는 모습. 사진은 '아가씨'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모호필름>(서울=포커스뉴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6.03 김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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